컨템포러리 아트
정치성의 오류를 수정하는 미술
행동주의 미술이 야기한 윤리적 오류들은 수정되어야 했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말을 하겠다.”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미술가들은 조금 더 현명해져서 공공미술, 행동주의미술, 공공실천 등에서 자신들만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고 모순된 사회적 합의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적 미술 비판이 심화되었다.
미술작품보다 우위에 선 전시기획
현대미술에서 스타 전시기획자가 등장한 이래 전시기획은 작품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전시기획은 마치 영화연출처럼 총체적 예술의 지휘자가 되어 사람, 작품, 공간, 장소, 콘텍스트를 조합한다. 전시기획자들이 80, 90년대 미술의 개념과 형식을 모방했듯이, 현대미술가는 전시기획을 흉내낸다.
관람객을 배신하는 미술
작품의 주제가 일상everyday이라고 카테고리화된 미술작품이라던가, 비기념비적unmonumental이라고 카테고리화된 미술의 외형을 보면 쉽게 부서지기 쉬운 일상적 재료가 등장한다. 이런 미술 작품을 근엄한 미술관에서 맞닥뜨릴 때 관람객은 배신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분노한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미술가가 예의 없이 관람객을 대한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한 현실을 풍자 가득히 보여준 것이다. 다다이스트들은 기존 미술의 변화를 위해 기이한 제스처를 했다면 현대미술가들은 관람자들의 인식과 미술 공간의 풍경이 달라지기를 원한다.
비서구 출신의 미술가들이 배운 서구 미술과 비서구 미술가들의 새로운 해석
일부 동남아, 아랍, 극동 아시아 출신의 미술가는 서구의 개가 되어 서구의 관점에서 본 오리엔탈 컨템포라리 아트의 정점을 이룬다. 서구 미술의 메커니즘을 체득한 동양의 미술가들은 동양의 자본과 서구 미술계에서의 성공으로 만인에게 추앙받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이를 가리켜 크로스오버, 퓨전을 너머 동서양 전통의 하이브리더티로 개념화된 탈경계라고 하는 무안하고 안타까운 비평도 있다.
자본을 획득한 ‘사회에 봉사하는 미술’과 ‘서비스로써의 미술’
현대 자본국가는 도시를 흠모하고 자본의 결정체가 된 도시는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고자 무장소성에서 탈피한 특이한 도시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개념은 정체되어 언제나 똑같은 모습 그대로이고 언제나 똑같은 기능만 반복한다. 행정가들은 차이를 위해 무던히 시도하고 미술가들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위해 헌신한다. 사회에 봉사하는 미술은 점차 서비스로써의 미술로 변모되고 서비스의 주체는 대중이 아니라 도시가 되어버린다. 현재 활동 중인 ‘서비스로써의 미술’을 생산하는 미술가들은 매우 유명할 뿐만 아니라 큰 자본을 운용할 수 있고 그들의 작품은 전세계 도시의 길거리, 광장, 대형 빌딩 앞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