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필사
김명희가 작성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 기고문 원고
아카이브 필사 김명희가 작성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 기고문 원고
2000. 9. 19.
시베리아 횡단 철도 (그림 CD 4)(그림 CD 2)
남북철도 연결로 철의 실크로드가 연결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익명의 땅, 동토의 땅이 20C 역사의 질곡으로 부터 벗어나 해빙기를 맞아 우리 앞에 펼쳐 지려는 순간이다. 3년전 기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했던 경험이 동영상으로 뇌리 속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학자, 작가, 종교인, 언론인 등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인과 고려인 일행이 17만명의 연해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60주년을 맞아 차량 8개를 연결한 전세 단독열차를 타고 그 시련의 길을 밟아 보므로써 고려인 동포들을 추모하고 기리며 현재 고려인들의 실정을 제대로 이해하려한 행사였다. (지도 CD7)
러시아 혁명을 완성한 볼쉐비키들은 항일투쟁을 하고 있는 다양한 한인세력들을 통합하려는 전략에 따라 1920년대 지원정책과 동화정책으로 1894년 3000 가구였던 조선인이 1926, 16만명으로 증가하였다. 당시 가난과 일제의 압박을 피해 연해주지방으로 이주했던 고려인들은 농부, 상인, 교육자, 망명자, 한인유격대 등으로 구성되어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에 투입된 인력에 공급할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련은 고려인들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피정복자로서 고려인의 반일감정은 일본의 만주국 건설로 인한 소련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고려인의 경제적 성공과 중국, 일본인과 같은 황색인종이라는 점은 소련을 긴장시켰을 것이고, 모스크바의 대 시베리아 통치구상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농사 잘하는 고려인 들을 이주시킴으로서 우랄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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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MA-02-00011381
전자여부전자
생산자(생산기관)김명희
생산일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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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문서
수집처김명희
분량7
원본여부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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