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야투(野投)의 작업은 대개 강가, 모래밭이나 섬 등에서 이루어진 일시적 행위였고 그 행위는 끝나는 순간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아카이브에 남은 것은 작업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작업이 '있었음'을 증언하는 기록입니다. 야투의 자료를 그런 눈으로 다시 모아보았습니다. 야투는 1981년 여름 공주 금강에서 시작됐습니다. 안내문과 현장 사진, 창립전 도록에 실린 작업.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만이 이 종이들 위에 남았습니다. 강에서의 참선, 모래밭의 퍼포먼스, 풀잎과 수염을 잇던 손짓. 이 행위들은 그날 그 자리에서 끝났습니다. 흥미로운 건 야투가 스스로 자기 행위를 기록으로 옮겨 두었다는 점입니다. 서해안 호도에서의 모래찜질은 사진으로, 다시 그 사진을 붙인 문서로 남았습니다. 행위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문서로. 사건에서 한 겹씩 멀어질 때마다 기록은 늘어나는데, 정작 그날의 몸짓은 점점 멀어집니다. 야투는 활동을 스스로 갈무리했습니다. 스크랩 폴더로, 작품집으로, 10년을 정리하는 자료전으로. 그중 한 문서에는 스무 명 남짓한 작가들의 이름과 약력만이 적혀 있습니다. 강가에서 벌인 그들의 행위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건 이름이 적힌 종이 두 장. 아카이브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리는지를, 이 한 점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렇게 자료를 따라 읽다 보면, 우리가 보는 사진 한 장이 결코 '작업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사진은 대상과 물리적으로 이어진 지표적 흔적이지만, 그 흔적조차 특정 각도·순간·프레임만 남긴 조각일 뿐입니다. 사진에 찍히지 않은 것, 이름조차 남지 않은 여백들이 훨씬 거대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아카이브는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그 여백을 안은 채 계속 다시 읽히고 다시 쓰이는 매체입니다. 사라진 행위와 남은 기록 사이의 거리, 그 거리를 감각하는 일이 곧 야투를 다시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