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예술 영역에서 생계를 유지한 지도 15년이 넘었음에도 막상 어디 가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한다고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순수예술, 출판, 대중예술 등등 넓은 영역을 커버해오고 있지만 사실 '기획' 또는 '코디네이팅'을 수행할 때 주인의식을 가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현장에서 같이 '좋은 예술'을 만들고 싶었는데, 일명 '창작자'라고 자기 이름을 거는 사람들에게 뭔가 반하는 의견을 개진하면 결국 나는 '나쁜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버려요. 15년 전 그때도, 사실 지금도 그래요. 화가가 '붓'이 도구라면, 예술 기획자는 '돈'이 도구 또는 힘이라고 25년 전에 배웠어요. 만약 돈이 넘쳤다면 아끼는 좋은 예술을 향유하고 사랑할 것이지, 굳이 예술 영역에 남아서 돈을 벌고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이런 회의감이 드는 것은 제가 아직도 많이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 이렇게 좀 질척거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질척일 때는 상큼한 환기가 필요한 법! 김홍석 작가의 아카이브 자료 중에서 제가 제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해온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보았어요. 먼저, 《초대장展》(2003)의 초대장 드로잉은 나도 인터뷰 영역의 작업을 구상할 때 구석에 도식을 끄적거리던 습관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좋은 노동 나쁜 미술》을 위한 다이어그램은 작가부터 독자까지 작품이 전달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특히 생산자들이 가볍게 패스해 버리는 저 같은 '중간 매개자'의 존재를 딱 짚어주어서 그간의 설움이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끝으로 2016년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퍼포먼스 대본에서는 미술가가 재료를 대하는 정치성을 말하고 있어요. 정치성을 저는 가식으로 읽히는데, 그걸 읽는 여러분도 그런 생각이 들런지 잘 모르겠어요. 특히 콘크리트에게 '옳지만 멍청하다'고 수식한 것이 기억에 특히 남아요. 이 전시가 있던 시기에 콘크리트에 대한 추앙을 많이 들었는데, '아니, 그게 그 정도인가?' 하고 지금까지 내심 의심하고 있었거든요. 2016년의 김홍석 작가가 콘크리트는 옳지만 멍청하다는 표현이 제 생각을 지지해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저는 미술을 포함해서 현대예술은 한 사람이 만들어 뚝 떨어뜨리는 신성한 무엇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로 엮이고, 번역되고, 때론 티격태격하며 수많은 노동이 포개져 만들어지는 큰 해프닝 같은 것 아닐까요? 마흔 살이 넘은 업계 종사자도 여전히 늘 '이게 맞아?' 하면서 속상하고, '왜 그랬지?' 반성하고 여태껏 그래요. 뭔가 이 스토리를 다 적고 나니까,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어요. 다시 힘을 내서 결과보고서 문서작업을 하러 가야겠어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