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컬렉션 개요
김정헌 컬렉션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건립 준비 과정 초기부터 수집된 컬렉션 중 하나로, 작가이자 교육자, 활동가로 활동한 김정헌(1946- )의 유년 시절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생애 전반에 걸쳐 수집하거나 생산한 자료로 구성된 컬렉션이다. 김정헌은 1946년 평양에서 태어나 6.25를 피해 이주한 유년 이후로 줄곧 서울에서 활동하며 해방 이후 서울의 급격한 밀집과 산업화의 명암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이와 함께 그는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30여년간 서울과 공주 사이를 출퇴근으로 오가고 직접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여행하면서 도심지로의 이주와 산업화로 인한 농업 기반 공동체의 쇠락과 폐해를 절감하며 이를 작품으로 증언해 왔다. 몸소 체험한 도시와 농촌 사이의 간극은 김정헌의 화업 전반을 관통하는 도심과 자연, 산업과 농업, 대중문화와 민속 전통, 개발과 보존, 자본과 노동, 제도와 시민사회 등의 상반된 이미지들이 거칠게 병치된 화면으로 드러난다. 한 화면에 공존하면서도 불화하는 특유의 양가성은 그가 살아온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억과 비판적 통찰을 함축하고 있다. 컬렉션은 김정헌 생애의 전반에 걸친 자료들로 구성되어 미술 작가로서의 작업과 더불어 ‘현실과 발언’의 창립부터 시민단체 활동 등을 아우르는 창작과 실천이라는 종횡의 궤적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 컬렉션 수집 과정
김정헌 컬렉션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개관 이전인 2018년부터 기획되어 두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수집되었다. 2018년 5월 진행된 1차 수집 사업에서는 가평 두밀리에 위치한 김정헌 작가의 작업실에서 최초로 작가를 만나 수집에 대한 긍정적 의사를 확인하며 드로잉 일부를 소량 수집했다. 곧이어 2018년 11월 진행된 2차 수집 사업에서는 작업실 내 소장되어 있던 자료를 전수조사 한 뒤, 작가가 직접 검토하고 선별을 마친 자료들을 미술아카이브로 이송하여 수집을 완료했다.
3. 컬렉션 구성
김정헌 컬렉션은 총 1,783건으로, 도서간행물 179건, 문서 606건, 사진 376건, 음성영상 2건, 박물 501건, 홍보인쇄물 119건이 포함되어 있다. 컬렉션 내 시리즈는 김정헌 작품 세계에서의 주요한 전환들이 있었던 시기를 기준으로 분류한 화업 전반이 담긴 ‘작품-일반작업 관련자료’와 ‘작품-공공미술 관련자료’, 김정헌의 주요 개인전과 단체전 참여 자료를 살필 수 있는 ‘전시 관련자료’, 작품을 넘어 사회 전반에의 개입과 실천의 궤적을 아우르는 ‘활동 관련자료’, 그리고 작가가 생산하거나 수집한 메모, 원고, 드로잉, 스크랩, 서신, 사진 등의 ‘개인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일반작업 관련자료
MA-03-00005589 <풍요한 생활을 창조하는 -럭키모노륨>(1981) 작품사진
MA-03-00005617 <냉장고에 뭐 시원한거 없나>(1984) 작품사진
‘작품-일반작업 관련 자료 시리즈’에서는 김정헌의 1980년부터 2019년까지의 미술가로서의 작품 활동 전반에 대한 자료를 살펴 볼 수 있다.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명륜동 화실에 있던 김정헌에게, 일찍이 대학 시절을 함께하며 군부와 산업화로 대표되는 당대의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던 최민과 오윤이 찾아온다. 이들은 이후 ‘민중미술’로 호명되는 1980-1990년대 미술 운동을 대표하는 ‘현실과 발언’ 동인의 창립을 논의했고 김정헌은 초대 회장을 맡게 된다. 그리고 동인전에 출품한 김정헌의 초기작 중, 아파트 입주민들을 겨냥한 양산품으로 전통적 바닥 도배를 대체하게 된 모노륨 장판 광고 속 캐치프레이즈에서 영감을 받은 <풍요한 생활을 창조하는 - 럭키모노륨>(198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대중 매체 광고 속 장면을 연상시키는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성과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 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상하로 대치시킨 <냉장고에 뭐 시원한거 없나>(1984,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등은 도시와 농촌의 간극과 폐해에 대한 천착과 상반된 이미지의 의도된 충돌이 그의 화업 초기부터 대두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 외에도 시리즈 내의 작품을 촬영한 사진과 드로잉 등 다수의 자료에서 일찍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김정헌 화풍의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다.
MA-03-00004985 작품 <말목장터 감나무> 사진
MA-02-00005325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 전시회≫ 조직위원회 '말목장터 아래 아직도 서있는……' 메모
부동산 자본으로서의 토지가 아닌, 생명을 일궈내는 농촌의 땅 위에서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민중에 대한 김정헌의 관심은 동학농민운동으로도 이어져 다수의 작품에서 관련한 요소들을 자주 등장시켰음을 발견할 수 있다. 봉기의 시작점이었던 정읍 말목장터의 나무, 전봉준과 농민들의 형상, 특히 최대 격전지였던 공주 우금치에 위치한 기념비는 직접 여러 번 현장을 답사하며 남긴 사진과 드로잉 자료가 확인되어 동학농민운동을 깊이 탐구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현재의 세태와 겹쳐 투과하듯 바라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MA-05-00006123 드로잉 <나의 기억엔 이제 쫓는 자와 쫓기는 자도 없다. 다만 재벌들과의…>
MA-03-00005753 <오직 나의 기억속에는…>(1995) 작품사진 필름
나아가 작품을 통해 실제 군부로 대표되는 지배 권력이 민중에 자행한 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는데, 1995년 개최된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오직 나의 기억 속에는…>(1995)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이미지와 기업 로고의 레이어를 겹쳐 표현했다. 한 화면 속에 공존하면서도 서늘한 대비를 이루는 김정헌 고유의 스타일을 확인 할 수 있는 한편, 작품을 위한 습작에 남긴 메모에서는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할 저항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도 엿보인다. 실로 김정헌에게는 작품 활동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분리된 것이 아닌 통합이자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작품-공공미술 관련 자료
MA-05-00006268 공주교도소 벽화 - 봄, 새참을 이고 있는 사람 드로잉
MA-05-00006270 공주교도소 벽화 - 가을, 지게꾼과 추수 드로잉
MA-03-00005485 공주교도소 벽화 <꿈과 기도> 앞에서 촬영한 사진
‘작품-공공미술 관련 자료 시리즈’에서는 현실과 발언에서부터 이어온 민중에 대한 관심이 시민들에게 경계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공공미술 작업으로 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정헌은 다수의 벽화와 조각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중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재직 시 불문과 교수로 부임한 퐁세 신부의 제안을 받아 제작한 공주교도소 벽화 <꿈과 기도>(1985)는 그의 첫 공공미술 작업이자 가장 규모가 큰 대표작이다. 하지만 이후 벽화가 허물어져 현재는 기획 단계의 드로잉과 자료 사진으로만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전시 관련자료
MA-06-00005875 1988년 《김정헌 작품전》 포스터
MA-01-00005005 2004년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김정헌_백 년의 기억》 도록
MA-01-00004969 1980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현실과 발언》 도록
MA-01-00004741 1986년 그림마당 민 개관기념전 《40대 22인전》 도록
‘전시 관련자료 시리즈’에서는 김정헌이 참여한 개인전과 단체전에 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김정헌의 개인전 당시 배포된 전시 인쇄물과 도록을 비롯하여 그가 참여한 단체전, 특히 그의 작품 활동과 생애 전반에 거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 발언’ 동인의 출판물, ‘그림마당 민’에서 개최한 단체전 등의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김정헌과 ‘민중미술’이라는 기치 아래 함께 화단을 누빈 연관 인사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종합적인 시야를 제공해 준다.
활동 관련자료
MA-03-00005740 1987년도 《민족미술협의회시무식》 단체사진
MA-03-00005477 ≪제5회 민미협 정기총회≫ 촬영한 사진
MA-03-00005478 8월 8일 그림마당 민 청년미술관 앞에서 촬영한 김정헌 사진
‘활동 관련자료 시리즈’에서는 김정헌의 작품 활동 외의 동인, 협회, 공직, 시민사회에서의 전방위적인 활동상을 살펴볼 수 있다. 독재 정권 아래 문예회관에서 개최한 ‘현실과 발언’의 첫 동인전은 그 급진적 비판의 수위로 인해 취소되었고, 자리를 옮긴 동산방화랑에서 마저 전기 공급이 끊겨 관객이 촛불을 들고 관람하는 등 당국의 탄압이 극심했다. 이후 이어진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1985) 탄압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1985년 정권의 개입에 저항하기 위해 창립한 ‘민족미술협의회’의 구성과 운영에 김정헌은 깊이 관여했으며, 협회의 기금조성전시를 개최하며 터전 역할을 했던 ‘그림마당 민’의 개관에도 힘을 실었다.
MA-03-0000579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판식≫ 기념사진
MA-02-00004783 「예술(디자인)로 행복한 마을 만들기」,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제안하며」 원고
10여 년간 지속한 ‘현실과 발언’의 해산(1990)과 8년여간 지속한 ‘그림마당 민’의 폐관(1994) 이후에도 김정헌은 사회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직접 단체의 장을 맡기도 하며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자 했다. 1999년에는 ‘문화 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 초대 공동대표로 취임했고, 2007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며 공직자로서 문화예술 생태계를 가꾸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2년 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사퇴 압력으로 위원장에서 경질되었다 다시 무효가 선고되는 등 여러 굴곡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럼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 농촌에 대한 관심을 마을 공동체 운동으로 확장하고자 했던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설립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4.16재단 초대 이사장까지 맡으며 화폭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의 행보를 보였다.
4. 김정헌 컬렉션은…
김정헌은 해방 이후 한반도의 민주화 과정과 산업화의 명암을 목격하며, 늘 낮은 곳을 살피고 민중과 농촌의 삶을 핍진하게 묘사하며 시대를 통찰해 온 작가이다. 이와 함께 군부 독재에의 항거는 물론 주요 예술 단체의 장을 도맡아 현실과 맞닿은 대안의 제시와 실질적인 개선에 헌신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김정헌은 그가 주축이 되었던 동인 ‘현실과 발언’이라는 이름에 새겨진 두 단어를 자신의 작품과 활동 전반에 녹여내며, 예술가란 그가 속한 사회와 긴밀히 연결된 존재로 그 역시 민중의 일부로 연대하고 발언함으로써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실천한 리얼리스트이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김정헌 컬렉션은 그의 치열한 삶 전반에 걸친 자료를 아우르며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민중미술’ 운동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내의 시민사회 형성과 활동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글 | 김다영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기록연구원)
교정 교열 | 강유미 Copy Editing: Yumi K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