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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다〉(2003)는
전준호의 ‘지폐’ 시리즈 중 하나로, 지폐 뒷면에 인쇄된 그림들을 배경으로 한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작가 자신은 영상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만원권 지폐에 있는 경회루를 시작으로 오천원권의 오죽헌과 천원권의 도산서원 안을 차례로 배회한다. 전시장 벽면 가득 프로젝션 되는 거대한 지폐 이미지 속에서 작가는 아주 작은 존재로 등장하여 적막감이 감도는 장소를 무의미하게 ‘부유’할 뿐이다. 이는 ‘부유하다’라는 단어가 가지는 중의적 의미, 즉 ‘경제적인 부를 소유함’과 ‘목적 없이 떠돌아다님’을 교묘하게 중첩시킴으로써 경제적인 부를 찾아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을 표류하지만, 결국 그 안에 갇혀버린 개인의 무력함을 풍자하고 있다.
전준호(1969- )는 부산에서 태어나 동의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고, 1997년 첼시미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내일의 작가》(성곡미술관, 서울), 2004년 《Instant Replay》(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2007년 《하이퍼 리얼리즘》(페리 루벤스타인 갤러리, 뉴욕, 미국), 2009년 《Bless You》(스카이 더 배스하우스, 도쿄, 일본), 2014년 《그의 거처》(갤러리현대, 서울)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2001년 《뉴 아틀란티스를 꿈꾸며》(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04년 《Showcase, Contemporary Art Society》(에든버러시립미술관, 에든버러, 영국), 2005년 《Shanghi Cool》(상하이 다울른 현대미술관, 상해, 중국), 2006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싱가포르), 2007년 제27회 《루블라냐 그래픽 비엔날레》(루블라냐 현대미술관, 루블라냐, 슬로베니아), 2009년 《슬로베니아 Beginning of New Era》(국립현대미술관, 기무사, 서울), 2012년 《카셀 도큐멘타 13》(카셀, 독일), 2012년 《Life Like》(워커아트센터, 미네아폴리스, 미국)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 광주은행상, 2007년 루불라냐비엔날레 대상,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2년 광주비엔날레 대상 눈예술상, 2013년 멀티튜드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전준호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사회가 처한 다양한 현실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영상 및 설치작품을 발표해왔다. 작가는 매체보다 작품의 개념을 결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재료는 단지 재료일 뿐 작품의 내용에 타당한 매체를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다는 것이 작가의 태도이다. 또한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비롯된 작품의 주제가 해외에 전시되더라도 관람자들에게 능동적으로 삶의 의미를 되묻는 기회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예술가로서 작가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궁금증에 대해 질문하면서 그 질문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관람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사색하는 상호작용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그의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