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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1985)은
안창홍의 1980년대 ‘기념사진’ 연작 중 하나로, 작가는 직접 수집한 1950, 1960년대의 오래된 사진들을 캔버스에 크게 전사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옛날 어느 학교의 반 단체사진을 이용한 것이다. 사진이 오래된 탓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거나 얼룩이 있는데, 작가는 주로 중심에 있는 인물들의 눈과 입에 마치 얼룩처럼 보이는 구멍을 그려 놓았다. 이 작품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순간을 캔버스 위로 불러냄으로써 사진의 역할을 환기시키면서, 눈과 입을 잃어버린 얼굴들을 통해 단체와 개인,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안창홍(1953- )은 1973년 부산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공간화랑(부산), 1986년 한강미술관(서울), 1989년 온다라 미술관(전주), 1993년 금호미술관(서울), 1999년 사비나미술관(서울), 2004년 공간화랑(부산), 2011년 《불편한 진실》(가나아트센터, 서울), 2013년 《발견》(대안공간 루프, 서울), 2015년 《야만의 시대》(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76년 《안창홍·정복수》(현대화랑, 부산), 1982년 《상황과 인식 회화》(현대화랑, 부산), 1983년 《제1회 시대정신》(제3미술관, 서울), 1983년 현실과 발언 《제4회 동인전》(관훈미술관, 서울), 1987년 《반(反) 고문》(그림마당 민, 서울), 1988년 《한국미술의 위상》(한강미술관, 서울), 1994년 《민중미술 15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5년
《번역에 저항한다》(토탈미술관, 서울), 2011년 《코리안 랩소디: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2016년 《앤솔러지》(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8년 《시대유감(時代遺憾)》(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두번째 풍경》(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1989년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00년 제10회 봉생문화상 전시부분 수상, 2001년 제1회 부일미술 대상, 2009년 제10회 이인성미술상, 2013년 제25회 이중섭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안창홍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그는 1970년대 독일 표현주의적 성향의 작품들을 시작으로 독특한 색채와 형태를 사용하면서 현실의 아픔을 생생하게 나타냈다. 1980년대의 <가족사진>이나 <전쟁> 시리즈에서는 텅 빈 눈을 한 그로테스크한 인물상들로 화면에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색채의 과감한 사용으로 긴장감을 주었다. 그는 주로 사회고발의 주제를 표현했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초현실적인 존재로 그려져 풍자성을 극대화한다. 1990년대에는 ‘여자’와 ‘꽃’을 소재로 삼았으며, 2000년대의 주요한 작업인 <49인의 명상>(2004)에서는 빛바랜 증명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넣어 과거를 현재로 소환했다. 2008-10년의 <베드 카우치> 시리즈는 주변 인물들을 누드모델로 섭외해 제작한 것으로, 흑백의 화면이 엄숙하면서도 인물의 도발적인 포즈로 인해 에로틱함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안창홍은 2017년의 개인전 <눈먼자들>에서 거대한 가면을 모티프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는데, 이는 초기작에서 텅 빈 눈의 인물을 표현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가면의 화려한 외양과 달리 그 눈은 텅 비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스펙타클한 사회와 매스미디어의 폭력성 이면의 인간성 상실을 말하고 있다. 안창홍의 작업은 강렬한 이미지로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자아’에 대한 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