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는 전통 채색화의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창출한 화가이다. 그는 형식적 전통주의 한계에서 벗어나 채색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조형실험으로 개성적인 화법을 구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화기법을 동양화 재료에 적용시켰고 색의 중첩에 의한 균질한 화면을 연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채색화법을 만들었다. 천경자 회화세계의 의미는 채색화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보다 독자적인 해석에 의한 인물의 창조에 있다 . 졸업 후 섬세한 묘사 위주의 사실적 화풍은 1950년대 전반기부터 천경자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투영한 형태와 색채의 상징화가 이루어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화려한 꽃으로 둘러싸인 가족과 여인을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꽃과 여인’이라는 특정 소재가 등장했고 자유로운 구도와 환상적인 화면으로 전환되었으며, 1970년대 초반 무렵부터 초상화 형식의 여성인물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73년작 <길례언니>를 기점으로 동공을 하얗게 칠하고 허공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우수에 가득 찬 여성인물화가 양식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천경자는 ‘자전적
여인상’, ‘초월적 여인상’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작품의 상징성을 도모하였다. 천경자 회화의 상징성은 자신의 삶에 기인한 고독과 한, 내면세계를 표출한 것에서 비롯된다. 천경자 여인상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은 눈동자이며, 작가는 눈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하고자 했다. 1980년대부터 대부분의 자전적 여인상은 이국적 소재와 도상이 화면에 재구성되면서,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시킨 상징이 되었다. 이후 고대 이집트 문명의 내세관을 모티프로 구현되기 시작한 금빛 눈동자와 초월적인 여인상은 1990년대까지 지속된 천경자 회화의 조형언어로 고착되었다.
<여인들>(1964)은 자전적 요소가 두드러지면서 자유로운 변용과 환상적인 분위기로 전환되는 시기의 작품이다. 수틀 앞에 하늘과 보라빛 옷을 입은 세 여인이 앉아있고 머리에는 면사포를 쓰고 있다.
여인들 앞에는 흰나비와 꽃무리가 있고 수틀 아래 붕어들이 맴돌고 있는 형상이다. 1960년대 초중반은 천경자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작품 속 여인들은 한결같이 면사포를 쓰고 있다. 면사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신부에 대한 환상과 동시에 욕구불만의 표출이기도 했다. 평면적이고 간결한 형태 해석, 자유롭고 활발한 붓의 율동감, 힘찬 선의 흐름이 화폭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사물의 윤곽선은 흐트러지고 거친 표면질감이 특징이다. 천경자는 당시 한국 화단에서 유행했던
추상미술의 개념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필묵에 의한 선의 개념과 색채를 결합시키고 사실적인 형태를 구현했으며 환상적인 화면을 연출함으로써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했다. <여인들>은 1965년 동경 이토화랑 개인전과 미술잡지 『미즈에(みづゑ)』에 원색도판으로 소개되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천경자(1924-2015)는 1943년 도쿄 소재 여자미술전문학교(女子美術專門學校)를 졸업했다. 1954-7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운영위원·분과위원장·심사위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1946년 제1회 개인전(전남여고 강당)을 시작으로 1995년 ≪천경자 회고전≫(호암갤러리)까지 20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55-8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초대작가 출품을 포함하여 1967년 ≪말레이시아 정부초청 초대전≫, 1969년 제10회 ≪상파울로비엔날레≫, 1977년 ≪한국 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 등 6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1955년 『여인소묘』를 시작으로 자서전 『내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9), 기행수필집, 화문집 등 총 18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여 수필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55년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 1971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75년 3·1문화상,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3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으며, 1999년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한국예술평론가협회)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