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작가들의 전시 <서울해부도>는 일련의 ‘서울 재발견’ 시리즈의 하나처럼 보인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많은 예술가들이 ‘서울’을 주제로 삼은 다양한 해석과 표현을 제시해왔다. 서울은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교육, 의료 등 문화의 집합장이며 중심이다. 이 분명한 사실과 현실 앞에서 작가들은 서울이 정말 그러한지 의문을 던져본다. 이러한 행위는 어쩌면 아무 쓸모 없는 무용(無用)의 유희이거나 그런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가늠하기 위한 유용(有用)한 전략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번 <서울해부도> 또한 이 양가적 가치와 목표를 염두해둔 협업전시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가 입주작가들과 함께 성장하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전시를 함께 만들어낸 김선태, 김원화, 김지은, 김진언, 장우진, 정소영, 현창민의 작업은 각자 독자적으로 수행해온 창작활동과 그 스타일을 이번 전시협업을 통해 객관화하는 실험을 한다. 비록 제한된 시간과 여건 하에서 진행되었지만 전시를 위해 참여작가는 각자의 일정을 조정해야 했고 또한 여러 차례의 토론 과정을 만들고 경험해야 했다. 그 과정이야말로 이 전시의 주된 목표이자 내용일 것이다. 그리고 <서울해부도>는 그러한 협업과정이 낳은 여러 갈래의 결과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 것이다. <서울해부도>는 실상 작가들 자신의 생활을 떠받치는 환경과 조건, 시대의 해부도이자 작자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해보는 과정이다. 서울이 바라본 난지, 서울이 바라본 예술가의 모습이다.
서울은 한국과 동의어처럼 확대되기도 하고 서울과 지방과의 격차(그것이 심리적이건 물리적이건)는 서울과 해외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은 사통팔달에 좌충우돌의 마치 비현실적으로 요동치는 도시처럼 보인다. 서울의 수직적, 수평적 확장과 진동 운동은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간다. 그리고 서울은 마치 마침내 어떤 인격을 갖추고 스스로 생각하는 불길한 인공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곳에 거주하는 시민은 단지 익명의 부품이거나 영원할 수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이 거대해질수록 사람은 점점 작아져 한 개인은 그야말로 먼지처럼 또 다른 개인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치 없음의 차원으로 추락한다. 서울은 모든 곳으로 통하는 그러나 그 어디와도 진정 만날 수 없는 도시란 소리다. 사람이 사라진, 사람의 가치와 인격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첨단 기능의 도시는 공포스럽고 불안하다.
2 “서울은 인간의 욕망이 넘쳐흐르는 탐욕의 대상이다.(김선태)”, “미래를 향해 도약하다 폭발했던 Challenger호를 연상 시키는 한국의 양가적 모습(김원화)”, “열린 구조인 이 ''''비계''''를 이용하여 지금 무엇을 짓고 있는가?(김지은)”, “서울은 내게 이런 양감을 갈등케 하는 연인 같다.(김진언)”, “거스를 수 없는 힘의 일부로서, 그리고 그 힘 앞의 위태한 개인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장우진)”, “끊임없이 세워지고 무너지는 건물들,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물건들과 그 안에, 자라나고 사라지는 수 많은 이야기들(정소영), “권력자의 기념비가 항상 세워지는 광화문에 서울의 실패의 역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지면 어떨까?(현창민)”
대체로 참여작가의 작업노트를 관통하는 기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분야가 됐던 서울에 대한 인상과 견해에는 어떤 보편적 기조를 공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공통된 정조를 <서울해부도>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일상화된 고립과 고독, 현대를 표현하는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한, 그리하여 합리보다는 비합리가, 공공의 가치보다는 어떤 음모로 작성된 계획서가 실행되는 도시로 비쳐진다. 이런 도시의 거주자들은 그 반동으로 도시로부터 탈출하는 ‘전원’과 ‘귀향’을 꿈꾸기 마련이다. ‘전원’의 또 다른 얼굴이 ‘예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어떤 위안과 치유를 기대한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새로움의 창조만큼이나 삶을 위안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안는다. 작가들의 실험과 탐구는 새로운 이해와 표현으로 승화되어 예측불허의 미지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발판을 만든다.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은 집과 도시와 도로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대한 발명품은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정신적인 것들이다. 물질의 운동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그리고 그 세계의 끝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정신에서 어떤 다른 운동을 시작한다. 그 위치에서는 위대한 도시가 위대한 오류처럼 보인다. <서울해부도>는 거대한 세계와 삶과 오류를 껴안고 한바탕 몸싸움을 해보는 것이다./ 김노암(전시기획자)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미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지원 공간입니다.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 사이에 있는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하였으며, 서울 중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25개의 작업실, 연구실, 원형 전시실과 야외 작업장에서는 국내외의 역량 있는 작가와 연구자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합니다. (전경사진: ⓒ Kim YongKwan)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변화하는 시각예술 환경에서 창·제작 공간으로서 협업과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 있는 작가 및 연구자를 육성하고자 입주를 지원합니다. 또한, 입주 작가와 기획자를 대상으로 협약을 통해 해외 기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