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1947-2013)은 1969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여운》(서울화랑, 서울), 1989년 《여운》(그림마당 민, 서울), 2006년 《검은소묘》(아트사이드, 서울), 2007년 《2007 한국 미술 현장과 검증》(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4년 《작고 1주기 유작전: 민족혼, 여운을 남기다》(인사아트센터, 서울) 등 개인전을 열었고, 1996년 《한국 대표시인주제미술전》(학고재, 서울), 2009년 《평화미술제: 대지의 꽃을 바다가...》(제주현대미술관, 제주) 등 단체전에 참여했다. 1969년 제18회와 1970년 제1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서양화부 우수상을 수상했다.
여운은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서구 모더니즘 계열의 작업인 <성분생태-4>로 우수상을 수상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구상적인 형태가 강화된 회화 작품들을 선보이며 민화와 무속 모티프를 차용하거나 한국문화의 원형을 탐구하며 다양한 형식과 재료를 이용한 작업을 시도했다. 사회적 발언과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1985년에는 김윤수, 신학철, 오윤, 김용태, 주재환, 민정기 등과 함께 민족미술협의회를 창립했다. 2000년대 이후 그는 한지나 천 위에 목탄과 콩테, 오일파스텔과 같은 재료를 써서 그린 풍경화 <검은소묘> 시리즈를 선보이며 다양한 작업 반경을 보여주었다. 그림의 본질로 돌아간 듯한 소묘 작업을 통해 그는 일종의 수묵산수화와 같은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분위기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러나 여운이 그린 풍경은 익명의 자연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와 연관된 풍경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가적 태도는 현재의 삶과 경험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