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과 미술연구 / SeMA 소장품
자소상, 연도미상, 김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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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연도 연도미상
  • 재료/기법 대리석 받침에 브론즈
  • 작품규격 56×25×30cm
  • 액자규격 -
  • 관리번호 2003-104
  • 전시상태 비전시
작품설명


김인승(1910-2001, 호 지연)은 1932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校) 서양화과를 수료하고, 1937년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제 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부>로 창덕궁상을 받고, 19회까지 연속 4회 특선을 수상하였으며,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었다. 그는 1943년에 심형구, 박영선과 친일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를 창립하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 심사위원과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고, 1949년 제1회 《국전》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전》 심사위원, 1955년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 1957년 예술원 회원,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서양화단의 구상 계열을 주도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1963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고 1965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1968년 3·1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9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974년 이후로는 미국으로 이주해 활동했다. 김인승은 1929년 송도고등상업학교 재학시절 《전조선학생미술전》(동아일보사 주최)에서 <임진강철교>, <뒷동산 풍경>으로 입선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었다. 동경미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나부>(1936)는 탁월한 사실적 기법에 정통한 작가가 정확한 데생, 섬세한 질감효과 부드러운 선묘 등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대작이다. 이후 일본 유학 당시 배운 고전주의,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다수의 인물화를 제작하였는데, 대상의 개성을 포착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 인물화 <화실에서>(1948)는 그림을 그리는 이국적인 여성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부유한 가정집의 실내를 배경으로 한 정적인 여인좌상은 젊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전람회를 풍미하기도 하였으며, 1970년대까지 계속된 한국 구상회화의 전개시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카데믹한 화풍의 전형을 창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안정적이고 견고한 구도와 조화로운 배색을 바탕으로 한국 근대미술의 기초를 다진 작가로 평가받는다. 1974년 이후로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으며, 이전의 인물화 대신 장미와 모란을 집중적으로 그림으로써 '장미 화가', '모란 화가'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