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풍경>(1965)은 나이프를 사용한 선적인 점묘 기법과 함께 이전 시기보다 밝고 경쾌해진 색채를 활용하여 제작한 풍경화이다. 배경으로 보이는 하늘, 산, 건물은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화면 앞에 위치한 무성한 수풀들은 페인팅 나이프로 그려져 선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인상파의 분할기법의 효과를 선적 점묘의 기법으로 보여주기에 크게 인상파적으로 이해”(미술비평가, 오광수)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마동(1906-1981, 호 청구靑駒)은 휘문고보에서 춘곡 고희동과 수재 이한복의 지도를 받았고, 설초 이종우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서양화의 기초를 습득했다. 1923년에 설치된 고려미술원에서 수학했으며, 1932년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敎)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 화신화랑(서울), 1953년 국제구락부화랑(부산), 1957년 중앙공보관(서울) 등 8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1986년 서울갤러리(서울)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1930년 동경미술학교 재학생들이 결성한 《동미전》(서울)을 시작으로 1934년 《목일회 창립동인전》(화신화랑, 서울), 1937년 《목시회 재기전》(화신화랑, 서울), 1953년 《제 5회 대한미협전》(부산), 1974년 《아시아현대미술전》(도쿄, 일본) 등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동아일보 미술기자로도 활동하였고, 보성중고교에서 20년간 재직하였으며, 홍익대학교 교수와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미술협회 부회장, 대한미술가협회 위원장, 국전 심사위원, 목우회 회장 등을 지냈다.
이마동은 한국 아카데미즘의 근간이 된 동경미술학교 출신으로, 적극적으로 서양화를 수용한 한국 서양화 도입의 2세대 작가이다. 그는 자연을 인상파적으로 관찰하고 해석하여 한국 현대 서양화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이마동의 작품세계는 크게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하여 전후로 나누어진다. 초기에는 일본 유학을 통해 경험한 일본식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영향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이 시기 대표작인 <남자상>(1931)과 <꽃이 있는 정물>(1933)을 보면 어둡고 무거운 갈색조의 색채가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명암의 대조를 강하게 사용하여 대상의 구조나 형태에 집중한 화풍을 살펴볼 수 있다. 1950년대 서구 회화를 직접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마동의 회화에서도 변화가 드러난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이를 구조적으로 조형화시키는 기존의 화풍은 유지하면서도 기법적인 면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1960년대 이후에 작품들을 살펴보면 화면에 밝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등장하며, 페인팅 나이프를 사용하여 점묘법을 구사하며 화면을 보다 서정적으로 다루는 화풍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