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말로, 중세 이후 유럽에서 크게 확산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발전한 양식을 가리킨다.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은 인체와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형태를 구현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적인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고안된 선원근법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전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의 성당들, 평면에 3차원적인 환영을 구현한 화가 마사초의 프레스코 벽화는 원근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르네상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피렌체,베네치아, 그리고 네덜란드와 독일의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는 조화와 균형에 바탕을 둔 이상적 형태를 표현하려 했다. 한편 조르조네,티치아노 등 베네치아 미술가들은 풍부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 터치를 구사하며 그림에서의 빛의 효과를 강조했다. 뒤러와 그뤼네발트 등 북유럽 미술가들은 정교한 세부묘사를 통해 사실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인물의 감정 표현을 극대화했다.
2
바로크 미술
BAROQUE ART
17세기
바로크는 역동적인 구성과 극적인 분위기를 통해 보는 이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미술 양식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자들의 교화를 위한 수단으로, 유럽 각국의 궁정에서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바로크 미술과 건축을 적극 활용하였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치하의 베르사유 궁은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이다. 카라치 형제가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카라바조는 대담한 자연주의와 극명한 명암 대조로 극적인 효과를 얻었다. 플랑드르의 루벤스, 영국의 안토니 반 다이크,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등은 색채와 빛의 새로운 조화를 발견하고자 했다. ‘회화적인’ 수단을 중시한 루벤스는 고전주의적 선묘 경향의 푸생과 대조를 이룬다. 바로크 양식은 교회와 궁전 건축에서 강한 장식성을 보였다. 가울리의 천장화에서는 환상적인 공간표현을 위한 급한 각도의 대각선, 과장된 원근법이 두드러진다. 건축의 내부를 장식한 조각의 대가로는 베르니니가 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지배적이었던 북부 네덜란드 등의 지역에서는 무역과 상업으로 성공한 상인들이 주문한 초상화나 풍속화,정물화, 풍경화 등이 성행했다. 렘브란트의 종교화는 영혼의 울림을 자아내는 깊이 있는 성서의 해석을 보여주었고, 할스와 베르메르는 유쾌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했다.
3
로코코 미술
ROCOCO ART
18세기
로코코는 루이 14세 말기(1700년 경)부터 나타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1730년대에 전성기를 이룬 미술 양식이다. 이전 시기 엄숙하고 웅장한 바로크 미술과 대조적으로 왕실과 귀족들의 호화롭고 세련된 취미를 반영하는 경쾌한 주제, 화려한 색채, 섬세한 장식적 요소가 특징이다. 와토, 부셰,프라고나르 등 이 시기 대표적인 화가들은 남녀 간의 사랑이나 연회 같은 가벼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이면의 허무감을 표현했다. 한편 샤르댕과 같은 화가는 서민의 일상에까지 주제를 확대했으며, 호가스는 로코코 양식을 이용하여 세태를 풍자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4
신고전주의
NEOCLASSICISM
1780~1830
로코코 미술의 지나친 기교와 화려한 피상성을 거부하고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주의 미술의 부흥을 꾀한 규범적이고 절제된 양식이다.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신고전주의는 프랑스혁명(1789) 시기와 이후 나폴레옹 제정시대의 공식 양식이 되었다. 프랑스혁명기의 역사적 상황을 묘사하면서 도덕적 메시지를 위한 로마공화정의 자유이념과 도덕관, 애국심에 따른 희생적 영웅정신을 활용해 로마를 프랑스에 재건하자는 이념을 반영하는 ‘역사화’의 새 기원을 이룩했다. 색채보다는 소묘에 주력하는 선적인 양식으로, 매끈하고 명암이 뚜렷한 조각적 형태 표현과 균형 잡힌 구도가 특징이다. 다비드와 앵그르가 대표적이다.
5
낭만주의
ROMANTICISM
1790~1850
낭만주의는 예술가의 개성과 감정의 표현을 중시한 사조로, 자연과 과거 역사에서 주로 영감을 찾았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프랑스혁명의 자유 이념의 영향으로,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나 영감과 상상력을 예술의 원천으로 여겼다. 이들은 선묘보다 색채나 붓 터치를 중시하는 회화적인 양식을 선호했다. 자유로운 구도와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감정의 표현이 이 시기 작품들의 특징이다. 제리코, 들라크루아, 터너, 고야, 블레이크, 컨스터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대표적이다.
6
사실주의
REALISM
1850년대 이후
1848년 혁명 직후 프랑스에 등장한 미술운동으로서, 이국적인 주제와 과장된 드라마를 특징으로 하는 낭만주의 회화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적 이상에 근거를 둔 아카데미 역사화를 거부하고 평범한 삶의 진실을 포착하고자 했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 대신 일상이, 영웅 대신 노동자나 농부가 화면 중심에 놓이게 되고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정확한 묘사가 채택되었다. 쿠르베, 도미에가 대표적이며, 이상화되지 않은 농촌풍경에 관심을 둔 밀레, 코로 등도 사실주의에 포함되어 논의된다.
1
조선 초기
EARLY JOSEON PERIOD
1392~16세기 중반
도화서를 설치하고 궁궐과 관청에 필요한 어진 및 기록화를 제작하였으며, 유교적 미감에 기초하여 절제된 색과 형태의 백자와 더불어 분방하고 실용적인 분청사기를 사용하였다. 안평대군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한 화원 안견은 송대의 이곽파 화풍을 받아들이면서도 넓은 공간과 여백을 살린 한국적 화풍을 일구어냈다. 강희안, 이경윤, 이정, 심사임당등의 그림이 전한다
2
조선 중기
MIDDLE JOSEON PERIOD
16세기 중반~18세기 초
왜란과 호란 등 전쟁을 겪으면서도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회가 정립되어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사군자와 산수화에 한국적 화풍이 형성되고 실경산수화와 풍속화가 발생하였다. 중국 명나라의 절파화풍을 수용하여 인물이 부각된 산수인물화가 발달하였으며 간결한 구도에 발묵을 이용한 필묵법, 거친 수지법 등을 구사하였다. 화원 김명국과 한시각,문인화가로 이정, 윤두서, 조영석 등이 대표적이다.
3
조선 후기
LATE JOSEON PERIOD
18세기 중반~19세기 후반
안정된 사회적 생산을 기반으로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영정조 시기에는 왕실과 국가행사를 기록한 의궤화와 국왕 및 문인들의 초상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문인화로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하되 우리나라 산천을 주제로 한 진경산수화가 크게 번성했으며, 인물화에서는 실제 인물 풍속을 그려낸 풍속화가 발달하였다. 백자에도 청화 안료로 산수화와 화조화를 그렸다. 겸재 정선을 중심으로 한 진경산수화는 우리 문화와 산하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과 성리학에 기반을 둔 소중화 의식을 바탕으로 실제 경치에 어울리는 필법으로 우리 산천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그려내었다. 조선 민인의 실제 생활모습과 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서민의 정서를 표현한 풍속화는 통속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일하고 놀이하는 모습을 간결하면서도 해학적으로 묘사했다. 3대 풍속화가로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을 들 수 있다. 청나라를 통해 서양화법에 바탕을 둔 명암법과 원근법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민간의 세속적인 미감을 반영한 생활장식화로서 현세기복적인 복록과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소재를 그린 민화가 유행했다.
7
인상주의
IMPRESSIONISM
1870~1880년대
1874년 «무명작가전»을 공식적인 출발로 하여, 출품작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로부터 표현을 빌려와 ‘인상주의자들의 전시’라 조롱조로 불린 것에서 이름을 얻은 미술운동이다. 모네의 화면이 대표하듯 인상주의는 화실 밖에서 직접 관찰을 통해 포착한 빛과 대기 변화를 빠른 붓질로 담아내고자 했다. 따라서 기존의 명암법이 거부되고 사물의 고유색이 부정되었으며 화면 전체가 활달한 붓질로 고르게 처리되었다. 이같은 형식 및 기법의 혁신은 개인의 자유와 즐거움 추구에 거리낌없는 개인주의적 이상을 지닌 미술가의 도래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카유보트, 피사로 등을 일컫는 인상주의자들은 또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대표되는 근대의 삶에 대한 기록자였다.
8
후기인상주의
POST-IMPRESSIONISM
1880~1900년대
생생한 색과 두터운 붓질, 일상적 소재 등에서 인상주의의 혁신을 계승하면서도 주제의 피상성이나 구조의 부재와 같은 면모를 극복하고자 한 프랑스의 미술운동으로서, 세잔, 반 고흐, 고갱은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인상주의를 지양했다. 세잔은 지적인 접근법으로 대상의 입체적인 구조나 보편적인 실재를 추구한 반면, 반 고흐는 기존 재현의 법칙을 위반하면서도 조형적인 설득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고갱은 주관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객관적인 지식과 시야 너머에 놓인 대안적인 현실을 암시했다. 그 과정에서 세잔은 밝은 색채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깊이감을 살리고 형태와 색채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화면에 질서와 균형을 부여하고자 했고, 반 고흐는 왜곡된 형태와 원색 위주의 거칠고 소용돌이치는 붓질로 주관적인 감정을 전달하려 했으며, 고갱은 형태와 색채의 관념적 의미를 추구하며 뚜렷한 윤곽선과 원색의 평평하고 넓은 색면 분할을 구사했다. 이들은 각각 20세기 초 입체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등의 근간을 이룬다.
9
야수주의
FAUVISM
1905~1910년대
1905년 «살롱도톤»전에 전시된 마티스, 드랭, 블라맹크 등의 작품을 조롱조로 ‘야수들(Fauves)’이라 부른 데서 이름 붙여진 미술운동이다. 거친 붓질과 색의 활용, 추상에 가까운 단순화된 형태를 채택함으로써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여러 혁신들을 극단으로 추구했다. 그 결과 자연의 모방이라는 오랜 서구회화의 기획으로부터 벗어나 20세기 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표현의 중요성과 ‘예술적 직관’을 강조하여 자의적인 강렬한 원색과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의 장식적 화면 구사가 특징이다. 프랑스 중심의 미술운동으로 세 번의 그룹전을 통해 짧게 지속되었다.
10
표현주의
EXPRESSIONISM
1905~1920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독일에서 인간 내면의 표현에 주목하여 발전한 미술운동이다. 대상에 느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는 표현주의는 구성이나 균형 등 고전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응하여 거친 붓질과 강렬한 원색으로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키르히너를 주축으로 1905년 결성한 다리파(1905~1913)는 형태와 색채의 왜곡을 통해 기존 체제의 질서에 대항하고자 했다.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주축이 된 청기사파(1911~14)는 내적 필연성에 의한 비대상 회화를 추구하여 형태와 색채의 자율성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표현적인 추상미술의 초석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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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주의
CUBISM
1907~1920년대
피카소와 브라크의 형태에 대한 혁신적인 탐구로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20세기 미술의 혁신에 도화선이 된 미술운동이다. “자연을 원통, 구, 원추로 보라”는 세잔의 금언과 아프리카 토착가면, 이베리아 지방 민예품 등을 참조하여 초기에는 형태를 기하학적 입체로 환원시킨 대담한 단순화를 꾀했다. 그러나 점차 극단적으로 대상이 해체된 파편들로 화면을 구성하는 ‘분석기’를 거쳐, 종이나 신문 조각 등 비예술적 오브제를 화면에 직접 붙인 콜라주를 시도하는 ‘종합기’로 전개된다. 다양하고 유동하는 시점의 동시적 수용, 원근법의 파괴로 인한 화면의 평면화, 일상사물과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성, 재현을 모방이 아닌 기호로 접근하는 태도 등을 통해 20세기 조형실험의 혁신적인 빗장을 열었다. 대표적으로 피카소와 브라크, 그리스, 레제, 들로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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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주의
FUTURISM
1909~1916
현대문명의 기술발전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대도시, 속도, 테크놀로지, 역동성, 소음, 기계 등에 열광했던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전개한 미술운동이다. 1909년 시인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보초니, 카라, 루솔로, 발라, 세베리니 등이 잇달아 선언문을 발표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기차, 경주용 자전거, 무희들, 움직이는 동물들을 소재로 회화, 조각, 도기, 그래픽 디자인, 건축 작업을 통해 미래주의를 실현했다. 대상의 윤곽이나 움직임을 율동적으로 반복해서 동시성을 묘사하고, 응축된 동시성 속에 감각과 기억에 대한 다층적인 경험을 종합하는 직관과 힘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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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구축주의
RUSSIAN CONSTRUCTIVISM
1910년대 초~1920년대 말
서구의 자율적인 미술 개념을 거부하고 러시아 혁명기 새로운 세계 건설의 목표에 내재된 유토피아적 열망을 구현하고자 했던 ‘종합예술’적 성격의 미술운동이다. ‘미술가-기술자’를 자처한 구축주의자들은 기계와 테크놀로지, 기능주의를 신봉하고 플라스틱, 철, 유리 등과 같은 산업재료를 활용했다. 혁명 이후 타틀린, 로트첸코, 스테파노바 등은 산업생산의 참여를 통해 미술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생산주의적(productivist)’ 경향을 추구했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 체제하에서 ‘전위’로 낙인 찍힌다. 반면 가보와 페브스네르 등은 유럽을 기반으로 구축주의적 이상을 순수조형적 실험으로 바꿔내는 ‘현실주의적(realistic)’ 입장을 취함으로써 구축주의의 추상화와 세계화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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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
DADAISM
1916~1924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환멸 속에서 상투적인 미의 관념을 버리고 반(反)예술을 추구한 무정부주의적 아방가르드 운동이다. ‘미는 죽었다’고 선언하며 일상 속 우연, 자발성, 모순, 부조리 등과 결부된 새로운 미의 관념에 주목했다. 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시작해 뉴욕, 쾰른, 하노버, 베를린, 파리 등지에서 국제적으로 전개되었다. 후고 발, 아르프, 차라, 얀코, 휠젠베크가 가담한 취리히 다다는 전쟁을 거부하는 부조리 시, 음악, 이국적인 춤으로 이루어진 이벤트와 논쟁을 즐겼으며 일상성, 우연성, 자발성을 강조한 허무주의적 정신이 근간을 이룬다. 뒤샹, 피카비아, 만 레이가 가담한 뉴욕 다다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개념을 제시해 전통적인 미술개념을 조롱하며 반예술을 극단까지 추구했다. 쾰른 다다에서는 에른스트의 부조리 콜라주가 초현실주의에 직접 영향을 끼쳤으며, 하노버 다다의 슈비터스는 메르츠 회화와 부조, 조각 작품으로 환경조각, 설치미술의 선구가 된다. 그로스, 하우스만, 회히가 가담한 베를린 다다는 정치 풍자적인 포토몽타주로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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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형주의(데 스테일)
NEO-PLASTICISM (DE STIJL)
1917~1931
네덜란드에서 반 두스뷔르흐가 결성한 ‘데스테일’ 그룹의 예술가들이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를 지지하며 전개한 미술운동이다. 이 그룹의 예술가들은 기하학적 순수 추상의 여러 경로를 모색했는데, 몬드리안이 새로운 조형적 비전으로 이상적 사회 건설을 꿈꿨다면, 반 두스뷔르흐는 일상 현실에 주목해 건축이나 장식미술 등 예술의 전반적인 통합을 추구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산업 디자인 등에도 범주를 넓혀 바우하우스 운동과도 상호 협력했다. 데스테일 운동에는 반 데어 레크, 반통게를로, 후사르, 건축가 오우트, 리트벨트가 가담했다.
16
바우하우스
BAUHAUS
1919~1933
건축가 그로피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 1919년 설립한 디자인 미술학교로, 건축을 주축으로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는 교육을 지향했다. 칸딘스키, 클레, 모호이-너지, 무대미술의 슐레머 등이 교수진으로 참여했으며, 미술뿐 아니라 건축, 가구 디자인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바우하우스는1925년 데사우, 1932년 베를린으로 옮겼다가 1933년 나치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나, 독일에서는 1955년 울름조형대학이, 미국에서는 전후에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하버드 대학과 일리노이 대학 등에서 그 이념을 잇는 건축을 실천하였다.
17
초현실주의
SURREALISM
1924~1940년대 말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며 주창한 미술운동으로, 다다이즘의 반(反)합리주의에 영향을 받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힘입어 보다 체계적인 이론과 전략을 고안해냈다. 근대사회의 도덕관과 합리성을 비판하고 그로부터 해방되는 수단으로서 꿈, 잠재의식, 경이, 광기 등을 내세웠고, 이런 의미에서 예술과 사회의 혁명 간에 놓인 긴밀한 관계를 주장했다. 마송은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을 회화에 적용했고, 달리는 편집증적 비평방법, 에른스트는 프로타주 기법, 마그리트는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주로 활용했다. 그밖에 미로와 조각가 자코메티가 참여했다.
4
근대 전환기
TRANSITIONAL PERIOD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조선 말기 김정희는 청대 고증학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서풍을 창안하였으며 그를 중심으로 시정과 문기의 함축적인 표현을 강조한 남종문인화풍이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장승업이 상해의 감각적이고 상업적인 화풍을 수용하여 독특한 오원양식을 정립, 확산시켰다. 장승업의 화풍은 안중식, 조석진을 통해 개화기 화단으로 이어졌다. 개화기는 사진과 인쇄미술의 도입, 서구와 일본 화가들의 내한 등을 통해 서양의 원근법과 명암법 같은 사실주의적 시각이 수용되어 초상화를 비롯한 전통 회화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5
서양화가의 등장
INTRODUCTION OF WESTERNSTYLE PAINTER
1910년대~1920년대
서양화법이 한국에 전래된 것은 조선 후기부터이나 서양식 매체를 사용하는 이른바 ‘서양화가’가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이다. 초기의 서양화는 주로 유화와 수채화를 이르는 말로 모델이나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는 신문화로 받아들여졌다. 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나혜석은 1세대 서양화가로 모두 일본 동경미술학교나 동경여자미술학교에서 유학을 했다. 이들이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화는 주로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절충된 양식이었다. 이 양식은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가 설립된 후 관전형 아카데미즘으로 정착했다. 1920년대부터는 일본 유학 이외에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서양화가가 되거나 장발, 배운성, 이종우, 임용련, 백남순 등 서구로 가는 유학생이 등장하면서 서양화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6
‘동양화’의 성립과 근대 채색화
FORMATION OF ‘DONGYANGHWA’ AND EARLY INK AND COLOR PAINTING
1920년대~1940년대 전반
20세기 초 안중식, 조석진 등 서화가들이 설립한 ‘서화미술회’ 출신 작가들은 조선미술전람회의 동양화부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서화’로부터 근대적 전람회미술인 ‘동양화’로의 변모를 이끌었다. 일본에 유학했던 김은호, 이한복, 이영일 등은 정밀한 관찰과 사생을 바탕으로 섬세한 필선, 세밀한 묘사, 평면적인 색채처리가 특징인 채색인물화와 채색화조화를 유행시켰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김은호의 ‘낙청헌’ 화숙에서 배운 김기창, 장우성, 이유태, 정찬영이나 일본의 학교를 나온 근대 동양화 2세대들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향토적인 소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채색화로 두각을 나타냈다.
7
근대 사경산수화
EARLY SAGYEONG (REAL-SCENERY) LANDSCAPE PAINTING
1920년대~1940년대 전반
1923년 서화미술회 출신의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이용우 등이 신구 회화의 융합을 내세우며 ‘동연사’를 결성하고 전통 산수화의 개혁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옛그림이나 화보를 베끼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주위 풍경을 원근법을 참조하여 사실적으로 그린 사경산수화를 추구했다. 전통시대 문인들이 시서화일치를 바탕으로 풍류와 탈속의 도구로 삼았던 산수화와는 달리, 자연을 대상화하여 사생한 ‘풍경화’로의 변모를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사경산수화가로 이상범의 ‘청전화숙’에서 배렴, 정종녀, 이현옥 등이 배출되었으며 대부분 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허건, 허림, 이응노 등에 의해 채색과 필묵의 느낌을 강조하는 서양화 사생풍의 신남화양식이 나와 산수화단이 다양해졌다.
8
한국적 유화의 추구
PURSUIT OF KOREAN OIL PAINTING
1920년대~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일본인 심사위원의 이국취향에 부응한 소재주의적 향토색이 유행했다. 이와는 다른 흐름으로 1920년대 후반 주로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이러한 소재주의 및 봉건회고 취미의 향토색을 비판하는 조선주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녹향회’, ‘백만양화회’, ‘동미회’, ‘목일회’ 등을 통해 활동한 김용준, 김주경, 길진섭, 구본웅, 오지호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들은 주로 일본의 신일본주의, 아시아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포비즘, 독일표현주의 등에서 보이는 색채, 표현의 주관성을 한국적 전통으로 재해석하여 한국적 유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서양의 모더니즘을 당대의 시대성과 결부시켜 한국성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은 해방 이후 앵포르멜, 단색화운동에서 심화되었다.
9
근대 조각
MODERN SCULPTURE
1920년대-1945
근대 조각은 1923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목조과를 졸업한 김복진이 길을 열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창설 당시에는 조각부가 없다가 1925년 신설되었고 1932년 폐지되었다가 1935년 다시 개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활동한 대표적 조각가로 문석오, 김경승, 윤효중, 이국전, 조규봉, 윤승욱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조각은 로댕, 부르델 류의 사실적 구상조각이 주류였다. 석고나 청동, 목조로 된 등신대의 인체 누드상이나 옷을 입은 인물상, 두상 조각이 주로 제작되었다. 한편 1930년대 후반 김복진은 금산사 미륵불과 법주사 미륵대불을 제작하여 전통 불교조각과 서구식 근대 조각의 융합 가능성을 제시했다.
10
프롤레타리아 미술운동
KAPF ART MOVEMENT
1920년대 중반-1930년대 초반
1925년 결성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중심으로 무산계급 미술운동이 일어났다. 카프는 1923년 문예단체인 ‘파스큐라(PASKYULA)’와 ‘염군사’가 통합하여 결성된 문학, 미술, 연극 등의 통합적 예술운동단체이다. 미술에서는 김복진이 대표적 이론가로 일본 신흥미술운동 마보(MAVO)의 영향 하에 예술을 위한 예술을 배격하고 예술과 인생, 현실과의 융합을 주장하는 데서 출발했다가 1927년 카프의 1차 방향전환 이후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미술운동을 지향했다. 김복진 외에 안석주, 이갑기, 강호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주로 잡지 표지, 삽화, 만화, 포스터, 무대배경 등을 통해 계급운동의 대중화와 선전에 주력했다. 1930년 수원에서 제1회 프롤레타리아미술전람회를 개최했으나 일본의 탄압으로 무산되었다. 카프는 1935년 공식 해체되었으나 미술의 사회적 역할, 사회변혁운동의 일익으로서 미술운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후 해방공간기 좌익미술, 1980년대 민중미술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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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추상미술
EARLY ABSTRACT ART
1930년대 말~1950년대
1937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의 전위미술단체에서 활동한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을 중심으로 추상 양식이 도입되었다. 구성주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하추상, 릴리프, 포토몽타주 등의 다양한 실험 작업을 하면서 추상=전위미술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1세대 추상미술가들은 해방 후 좌우익의 이념 갈등 속에서 정치성을 배제한 ‘순수미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신사실파(1947~53)’, ‘모던아트협회(1957~)’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추상화하는 반추상, 추상 경향이 1950년대 한국 모던아트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전위미술을 접한 초기 세대 중에는 추상 이외에 소, 말, 동자, 달, 춘향과 같은 조선적 소재를 초현실주의적으로 해석한 작업들도 나왔다. 이중섭, 문학수 등이 대표적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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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기의 미술
ART IN LIBERATION PERIOD
1945~1948
해방 이후부터 1948년 남한단독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이념적 혼란을 겪었던 미군정기의 미술을 해방공간기의 미술이라 이른다. 일본 잔재 청산과 민족미술 수립이라는 당면과제 아래 윤희순, 김용준 등에 의한 조선미술사 연구와 민족미술의 정체성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나왔다. 국립박물관이 개관되고 서울대, 홍익대, 조선대, 이화여대에 미술대학이 설립되는 등 일제강점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술제도가 비로소 정비되기 시작했다. 반면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으로 조선미술동맹, 조선미술가협회 등 미술가들의 이합집산이 많아 뚜렷한 작품 활동을 하기 힘든 시기였으나 이쾌대의 ‹군상›과 같은 대작이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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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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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포르멜
INFORMEL
1940년대 중반~1950년대
20세기 전반 추상과 초현실주의의 미학적 혁신, 동시기 전쟁 체험과 인간성의 위기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교차하면서 전후 미술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유럽에서 특정 방식의 추상미술을 통해 시작된다. 추상표현주의는 크게 개성적이고 거친 붓질이 두드러진 액션페인팅(혹은 제스처적 추상)과 비개성적이고 넓은 색면이 부유하는 듯한 색면 추상회화로 구분된다. 바닥에 놓인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흘리는 드리핑 기법의 잭슨 폴록, 강렬한 붓 터치로 거친 이미지를 형상화한 윌렘 드 쿠닝, 서예를 연상시키는 검은색의 거대한 붓질이 특징인 프란츠 클라인이 전자에 속한다면, 감정 표현을 절제한 넓은 색면으로 미묘하고 사색적인 화풍을 구사한 마크 로스코, 단순하고 단일한 화면을 창조한 바넷 뉴먼, 단색의 사각형을 통해 추상회화의 환원적 속성을 극단으로 추구한 애드 라인하르트가 있다. 유럽에서는 전후 정서를 반영하듯 기하추상의 지적이고 차가운 형식을 거부하고 보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면모에 주목하여 원시적인 몸짓과 격정적인 기호를 새로운 표현수단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향을 ‘비정형(앵포르멜)’ 미술이라 불렀다. 앵포르멜에는 얼룩을 특징으로 보여주는 타시즘, 원초적인 감정이나 표현의 본능에 기초한 원생미술이라는 뜻의 아르 브뤼트 등이 포함되고, 하르퉁, 마티외, 타피에스, 포트리에, 볼스, 뒤뷔페 등이 대표 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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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다다
NEO-DADA
1952~1960년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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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레알리슴
NOUVEAU RÉALISME
1960~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네오다다적 경향은 일상적 오브제나 재료를 활용한 콜라주, 아상블라주, 해프닝을 통해서 반(反)미학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예술과 삶을 통합하려한 20세기 전반기 다다를 원천으로 삼지만 문화산업의 고도화라는 새로운 조건을 탐색했고, 추상표현주의의 미학주의를 넘어섰지만 그 제작의 수행적 면모, 재료의 이질성과 물질성, 크기의 환경적 차원을 계승했다. 음악가 존 케이지와 데이비드 튜더, 무용수 머스 커닝햄 등과도 함께 한 이 미술운동은 예술과 삶뿐 아니라 여러분과 예술의 경계 파괴에도 선도적이었다. 라우셴버그의 ‘콤바인 회화’와 재스퍼 존스의 납화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네오다다적 경향에 상응하는 유럽의 미술경향인 누보레알리슴은 1960년 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실재를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들’이라 주창하는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도시적이고 산업적인, 광고 이미지로 가득한 현실을 ‘시적으로 재활용’하는 다양한 방식의 콜라주, 데콜라주, 아상블라주를 제작했다. 모노크롬의 비물질화를 시도한 이브 클랭, 아상블라주의 아르망과 세자르, 찢긴 포스터로 작업한 데콜라주의 뒤프렌, 앵스, 빌르글레, 그 밖에 스포에리, 탱글리, 니키 드 생 팔, 크리스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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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틱 아트
KINETIC ART
1954~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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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아트
OP ART
1950년대 말~1960년대
키네틱 아트는 실제 움직임을 조형요소로 도입해 조각 개념을 확장한 경향으로 씨네티슴(Cinétisme)이라고도 불린다. 1955년 드니즈 르네 화랑에서 열린 «움직임»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으며, 자연의 힘이나 자력, 전기모터에 의한 움직임 등을 활용한 작업이 특징적이다. 콜더의 모빌과 탱글리의 기계장치가 대표적이다. ‘시각적 미술’이란 뜻의 옵(티컬)아트는 실제로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와 달리, 기하학적 형태나 얼룩말 패턴의 반복을 통해 화면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활용했다.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반응하는 눈»전을 통해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움직임»전(1955)을 주도했던 바자렐리, 아감, 브리짓 라일리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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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POP ART
1955~1960년대
광고, 만화, 잡지, TV, 영화 등 대중매체와 소비문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예술의 맥락에 끌어들인 영국과 미국의 미술사조로서, 고급/저급, 순수/실용, 전문/일반 등의 위계를 흔들어놓았다. 전후 내핍의 조건에서 등장한 영국 팝이 대부분 미국의 것인 대중문화와 상품미학에 대한 선망과 질시의 양가적 태도를 드러냈다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갖춰진 풍요의 시대 속에서 부상한 미국 팝은 동일한 요소들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1956년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게 만드는가›가 최초의 팝아트 작품으로 언급되며, 피터 블레이크, 앨런 존스, 파올로치, 호크니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에는 워홀을 비롯해 만화를 확대해 그린 리히텐슈타인, 사물을 거대하게 확대 제작한 올덴버그, 현대 풍속도를 거대한 간판처럼 그린 로젠키스트, 대담한 누드화의 웨셀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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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MINIMALISM
1960년대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이 아닌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의 기본단위를 채택한 화면이나 구조물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운동이다. ‘ABC미술’, ‘기본구조’, ‘환원회화’ 등의 당대 경쟁 용어들이 알려주듯 그 자체로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나 그로 인해 작품 자체가 아닌 그것이 대상, 관람자, 전시공간과 맺는 관계로 관심을 돌리는 혁명적인 전환을 이뤄냈다. 이 전환은 이후 제도비판이나 장소특정적인 미술로 이행하는 길을 열었다. 미니멀리즘은 50년대 말 캔버스의 평면성과 재료적 성격을 탐구한 프랭크 스텔라, 엘스워스 켈리, 애그니스 마틴 등의 자기참조적 회화를 포함하지만, 보다 전형적으로는 단일하거나 반복적인 배열의 3차원 구조물[Specific Object]의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 로버트 모리스, 댄 플래빈, 솔 르윗 등의 작품들을 일컫는다. 작품을 둘러싼 환경과 현상학적 경험에 대한 강조 이외에도, 알루미늄, 벽돌, 합판, 형광등, 유리, 플랙시글라스 등 산업재료를 활용하고, 단일하거나 반복적인 형태가 대량생산과 공간의 모듈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형태와 유사하다는 점이 주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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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HAPPENING
1958~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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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FLUXUS
1962~1970년대 초
해프닝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미술실천과 거리를 두고, 일상적 환경에서 관련 요소들을 활용하는 퍼포먼스에 근거를 둔 미술운동이다. 해프너들은 퍼포먼스의 우연성, 즉흥성과 함께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중시했다. 비가역적인 순간의 예술로서 참여자들 개개의 고유한 경험만이 내용이 됨으로써 대상물로서의 작품 개념에 도전했다. 해프닝이라는 용어를 창안한 앨런 캐프로가 1958년 최초의 해프닝을 선보였고 그 밖에 짐 다인, 올덴버그, 휘트먼 등이 참여했다. 플럭서스는 존 케이지의 예술관에 기초해 독일에서 조지 마키우나스를 중심으로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딕 히긴스, 조지 브레히트, 보티에, 포스텔 등이 가담한 미술운동이다. 오브제 설치와 해프닝을 동반한 이벤트를 주로 벌였으며, 명칭은 ‘흐름’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따왔다. 예술과 삶의 경계 허물기에 천착하고 음악, 미술, 연극 등 예술 간의 경계도 없애 여러 예술 장르를 결합하는 멀티미디어 미술의 선구가 되었다. 국제적 양상을 띠며 격동적인 유럽의 60년대를 해학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행위예술로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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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PERFORMANC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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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미술
BODY ART
1960년대 초~1970년대
퍼포먼스아트는 미술가가 자신의 몸을 재료로 사용해 일련의 행위를 수행하는 미술 경향으로, 미술가의 몸뿐 아니라 시간, 공간, 관람자와의 관계 모두가 작품의 구성요소가 된다. 70년대에는 몸이 작업의 주체이자 대상인 점이 강조되어 신체미술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50년대 말 앨런 캐프로를 필두로 한 해프닝, 60년대 초 백남준과 보이스 등의 플럭서스, 빈 행동주의, 미국의 저드슨 무용단 등이 포함된다. 그밖에 캐롤리 슈니먼, 오노 요코, 비토 아콘치, 크리스 버든, 브루스 나우먼, 길버트와 조지가 있으며, 조앤 조너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이 이 경향을 지속했다. 이들은 특히 생물학적인 몸과 문화 구성물로서의 몸이라는 이중성을 통해 젠더나 인종과 같은 정체성 문제나 성, 윤리, 인권, 사회 관습을 문제로 삼았다. 특정한 순간에 현장에서 행해진 후 사라져버리는 특성으로 인해 퍼포먼스아트는 기록의 측면에서 사진이나 비디오아트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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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트
VIDEO ART
1963~1990년대
비디오 영상과 설치 모두를 일컫는 미술경향이다. 비디오아트를 정초한 백남준은 1963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전에서 TV조작에 의한 전자영상을 선보였고, 1965년에는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소니 사의 휴대용 비디오녹화기를 이용하여 최초로 싱글채널비디오를 제작, 전시했다. 비디오의 도입은 실험적인 미술가들의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데도 기여했다. 초기에는 실시간의 거친 흑백기록 싱글채널비디오가 주를 이루다가 여러 대의 모니터로 구성된 비디오설치나 멀티스크린 작품으로 발전한다. 초기에는 백남준 외에 브루스 나우먼, 비토 아콘치, 조앤 조너스, 피터 캠퍼스, 마사 로슬러, 1971년 개관한 ‘키친’에서 비디오아트 장르 개발에 기여한 스테이나와 우디 바술카 부부가 대표적이며, 후기에는 게리 힐, 폴 파이퍼, 스탠 더글러스, 빌 비올라, 더글러스 고든, 피필로티 리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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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
CONCEPTUAL ART
1965~1970년대
제작의 결과보다 그 개념과 과정의 제시에 역점을 두어, 미술의 탈물질화와 탈매체적 전환을 야기한 미술경향이다. 극단적으로는 작품이 제작되지 않을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제작 개념과 과정을 드러내는 사진, 텍스트, 다이어그램, 도표, 그래프 등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 따라서 행정의 고도화와 정보화 사회의 도래에 대한 미학적 반응으로 이해하는 논의도 있다. 60년대 로버트 모리스와 에드 루샤를 비롯해 조지프 코수스, 로렌스 웨이너, 더글러스 후블러, 멜 보크너, 댄 그레이엄, 존 발데사리, 아트 앤 랭귀지 그룹이 대표적인 실천가들이다. 중립적인 면모를 보이던 초기의 개념주의 미학은 유럽의 급진적인 정치적 이상과 연계되어 제도비판적 작업으로 확장되는데, 빅터 버긴, 다니엘 뷔렌, 요제프 보이스, 한스 하케, 마르셀 브로타르스가 관련된다. 1967년 솔 르윗이 쓴 «개념미술에 관한 소론»이 그 시작을 알렸다면 하랄트 제만이 기획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전(1969)과 도쿠멘타5(1972)를 통해 제도적으로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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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미술
LAND ART
1968~1970년대
자연이나 도시 환경을 작품의 주요 구성요소로 활용하는 미술경향으로, 많은 경우 사막, 산악, 호수, 바다 등 외딴 장소와 연관된 작업을 떠올리지만 도시의 인공 환경 또한 그 지리적 상상력의 주요 실행 장소였음이 최근 논의되고 있다. 작품을 옮겨 올 수 없고 현장에서만 경험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풍화와 소멸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대지미술은 영원하고 소유 가능한 물건으로서의 작품에 대한 거부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사진이나 영화, 지도, 옮겨 온 돌과 흙 같은 대체물은 매우 수익성이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한다. 로버트 스미스슨, 마이클 하이저, 월터 드 마리아, 크리스토의 작업이 기계장비를 동원해 땅을 파헤치거나 덮는 등의 거창한 방식의 개입이었다면, 리처드 롱과 앤디 골드워시는 자연 속에 소소한 흔적을 남기는 조용한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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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미술
FEMINIST ART
1960년대 말~1980년대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상식적인 질문만큼이나 ‘무엇이 여성들이 위대한 미술가가 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를 묻는 각성에서 촉발된 여성주의 미술은 ‘여성성’이라는 본질적인 성 차이에 근거한 여성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에서 점차 정신분석학과 후기구조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에 주목하고 여성의 구성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이행했다. 주디 시카고와 미리엄 샤피로로 대표되는 전자의 본질적 여성주의 미술은 여성의 자연과의 친화력을 강조했고 몸을 활용한 ‘여성적’ 감수성을 탐색하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공예와 장식미술에 주목했다. 반면 후자의 문화사회적 여성주의 미술은 언어와 이미지 전용을 활용한 개념적이고 분석적인 작업을 통해 남성 중심의 체계 속에서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과 이데올로기적 구성에 주목했다. 대표적으로 제니 홀저, 바버라 크루거, 메리 켈리, 신디 셔먼, 로라 멀비, 아나 멘디에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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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
HYPER-REALISM
1970년대
평범한 도시 경관이나 주변 인물, 일상 기물 등을 거대한 화폭이나 실물대 조각에 사진처럼 기계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한 미술경향으로 ‘포토리얼리즘’ 또는 ‘수퍼리얼리즘’으로도 부른다. 전통적인 모방술인 눈속임(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하지만, 냉담한 재현으로 대상에 정서적 공감을 허용하지 않는다. 리처드 에스티스, 척 클로스, 랠프 고잉스, 조각의 두에인 핸슨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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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
1970년대 말~1980년대
1960-70년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볼거리의 부재, 이론과 정치에 대한 민감성에 반발하여 거칠고 격렬한 표현으로 이야기와 형상을 부활시킨 국제적인 미술경향이다. 독일의 신표현주의, 프랑스의 자유구상, 미국의 뉴이미지회화,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를 모두 포괄하며, 거대한 크기와 영웅적이고 표현적인 제스처, 복고주의, 혼성모방, 절충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바젤리츠, 키퍼, 펭크, 임멘도르프, 뤼페르츠가 주도한 독일 신표현주의는 굴욕적인 자국의 현대사를 20세기 초의 독일표현주의를 되살려 극복하고자 했고, 슈나벨과 살리가 주도한 미국 뉴이미지회화는 콜라주와 차용한 이미지들의 혼합인 혼성모방으로 전통적인 재현과는 다른 구상미술을 보여준다. 신화성을 강조하고 고전을 계승하는 경향을 보인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는 키아, 쿠치, 클레멘테가 대표적이며, 프랑스 자유구상에는 콩바스, 가루스트, 블레가 있다. 전통으로의 복귀, 모더니즘과의 결별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회화로 불렸고, 아방가르드 미술실천과 흑인이나 여성 등 소수집단의 미술을 외면하고 미술상업과 결탁한 신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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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 포스트모던 미술
DECONSTRUCTIVIST POSTMODERN ART
1980년대~
상호매체적이고 상호학제적인 방식으로 매체와 기율에 관한 기존관념을 거부하고 시각중심의 문화에 도전하는 20세기 말의 미술 태도이다. 신표현주의가 모더니즘 이전의 전통적 가치로 복귀한다는 점에서 그 포스트모더니즘적 면모를 신보수주의적이라 부를 수 있다면, 해체주의 혹은 포스트구조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보다 급진화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혹은 진보적이라 논의되곤 한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적 혁신과 정치적 이상을 공유하거나 성찰하면서 동시에 원본성, 작가성, 주관성 등의 모더니즘적 가치를 의문시한다. 대표적인 미술가로 셰리 레빈, 루이스 롤러, 바버라 크루거, 로리 앤더슨, 제니 홀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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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아트
NEW MEDIA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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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퍼포먼스
MEDIA PERFORMANCE
1980년대 말~
첨단기술을 이용해 소리나 영상을 제작하고 기록하는 미술경향으로, 주로 알고리듬에 기초한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특성으로 인해 아날로그 매체와 구분해 디지털아트라고도 하며 컴퓨터그래픽, 컴퓨터 애니메이션, 가상현실, 인터랙티브아트, 비디오게임, 로봇공학, 3D 프린팅, 인터넷아트, 유전공학, 생체공학 등을 포괄한다. 비디오아트와 마찬가지로 탈물질화와 시간성에 기반한 시간 레디메이드이며 쌍방향 소통과 접속을 추구한다. 미디어퍼포먼스는 첨단 미디어와 실황 퍼포먼스를 다학제적 방식으로 융합하는 종합예술적 경향으로 현장의 퍼포먼스(동시성)와 기록을 동시에 실행한다. 미술, 문학, 사진, 방송, 영화, 연극, 무용, 뮤지컬, 음악, 미디어아트 등 경계를 넘나들며 융합 컨텐츠 전시나 공연, 이벤트를 벌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경향의 하나이다. 선구적인 미디어퍼포먼스로 백남준과 샬롯 무어먼의 공연을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의 미술가들로 스텔락, 로베르 르파지, 로리 앤더슨, 에두아르도 카츠, 도라 가르시아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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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 아카데미즘
NATIONAL ART EXHIBITION ACADEMISM
1949~1981
대한민국 출범 직후인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가 설립되어 한국전쟁으로 인한 3년간의 공백 이후 1953년부터 1981년까지 매년 개최되었다.(총 30회) 조선미술전람회의 틀을 바탕으로 아카데미즘을 이어갔다. 서양화부에서는 제1회 대통령상을 받은 류경채의 ‹폐림지 근방› 이후 반추상이 새로운 양식으로 대두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아카데믹한 양식을 이은 정물 및 여성 실내 좌상이 유행했다. 동양화부에서는 이상범, 배렴 등의 사경산수화와, 서세옥, 박노수 등의 수묵인물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1960년대 이후 국제화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앵포르멜 등의 추상미술이 화단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국전도 비구상과 구상 부문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심사위원 및 입상 작품 선정 등을 둘러싼 화단정치 등의 고질적 병폐로 인해 1981년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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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
UPHOLDING AND MODERNIZATION OF TRADITIONAL INK PAINTING
1950년대~
해방 이후 일본화풍의 청산과 민족회화의 수립이 한국화단의 과제로 대두되면서 채색화는 일본적이라 하여 배제된 반면 근대 사경산수화와 조선시대 문인화는 민족적인 회화로 부각되었다. 이상범, 변관식 등의 사경산수화가 현대 한국화단의 큰 줄기로 자리매김해 나갔고, 김용준, 장우성 등이 주창한 신문인화 역시 폭넓게 확산되었다. 이들이 강조한 문인화정신은 현대 한국화의 근본 조형이념으로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응노, 김영기, 박래현, 김기창 등은 큐비즘, 앵포르멜 등 서구미술의 조형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한국화를 현대화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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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포르멜 회화
INFORMEL PAINTING
1950년대 중반~1960년대 중반
1957년에는 ‘창작미술가협회’, ‘모던아트협회’, ‘신조형파’, ‘현대미술가협회’ 등의 미술단체가 발족되어 현대미술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중 ‘현대미술가협회’는 일제 강점기 이래의 봉건적 요소에 대한 저항을 주창하며 비정형의 표현적 추상미술인 ‘앵포르멜’ 운동을 전개했다. 한국의 앵포르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앵포르멜과 유사한 배경에서 전후의 암울한 시대적 정서와 실존적 저항을 어두운 색채와 두터운 마티에르의 화폭으로 반영했다. 김창열과 박서보의 주도로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 윤명로 등이 참여했으며, 이들과 달리 독자적인 화풍을 구사한 남관, 이세득, 권옥연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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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조각
ABSTRACT SCULPTURE
1950년대~1960년대
1950년대 후반부터 조각에서도 사실주의적 양식을 탈피한 추상조각이 등장했다. 나무, 돌, 청동이 주가 되었던 기존의 조각 대신 철조를 비롯한 금속이 새로운 재료로 등장했으며 브란쿠시, 아르프, 헵워스 류의 추상조각이 주로 제작되었다. 김종영, 송영수, 김정수를 필두로 최기원, 박종배, 최만린, 박석원, 엄태정 등 표면 질감을 강조하는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조각도 나왔다. 한편 구상조각에서는 이승만 동상, 전쟁기념동상 등의 기념동상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다수 제작되었다. 예외적으로 사색적이고 내면적인 인물상을 테라코타로 제작한 조각가로 권진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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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추상 실험
EXPERIMENTATION ON ABSTRACTION IN INK PAINTING
1960년대~1970년대
1950년대 말 한국 서양화단에 밀어닥친 앵포르멜의 열기 속에서 한국화에서도 젊은 작가들이 파격적인 추상회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1960년 ‘묵림회’가 서세옥과 민경갑, 정탁영, 전영화 등 서울대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1963년에는 박노수, 안상철, 천경자 등이 참가한 ‘청토회’와 조평휘, 김동수, 하태진, 오태학 등의 ‘신수회’가 창설되었으며, 1967년 ‘한국화회’까지 잇달아 출범하여 한국화의 새로운 조형운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국화의 추상 실험은 초기에 운필과 발묵의 표현을 강조하던 데에서 점차 수묵과 채색, 한국화와 서양화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실험을 시도하였고 오브제 작품으로까지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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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추상
GEOMETRIC ABSTRACTION
1960년대 중반~1970년대
1960년대 중반 이후 앵포르멜 경향이 퇴조하면서 이를 대체하여 기하학적 추상 혹은 옵아트적 경향이 1967년 ‘오리진’ 그룹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선명한 원색의 기하학적 구성과 매끈한 표면을 특징으로 하는 기하 추상은 앵포르멜의 표현적 경향에 대비되어 한국 사회의 도시화와 산업화를 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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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
MONOCHROMATIC PAINTING(DANSAEKHWA)
1970년대
1970년대 초 백색의 추상회화가 부분적으로 선보이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을 기점으로 서구식 추상에 한국적 전통의 미감을 반영한 ‘백색 모노크롬’이 구체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박서보와 이우환을 중심으로 한 단색조 화풍은 한국적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여러 미술가들의 공감을 얻어 집단적 경향으로 미술계를 주도했다. 단색조 회화는 평면성에 기반한 추상을 특징으로 하지만, 형식주의 미학의 논리적 귀착점인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달리, 추상에 한국적 정서와 전통적 미감을 결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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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 개념미술 / 퍼포먼스 / 설치미술
HAPPENING / CONCEPTUAL ART / PERFORMANCE ART / INSTALLATION ART
1960년대 말~1970년대
1960년대 말 포화상태에 이른 앵포르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청년 미술가들이 연합하여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는 ‘무’, ‘신전’, ‘오리진’ 동인 등이 참여했다. 오브제 설치, 개념미술, 퍼포먼스, 해프닝 등 탈장르의 실험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현상은 1970년대 초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정찬승과 정강자는 최초의 집단 해프닝 ‹비닐 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을 펼쳤고, 김구림은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를 발표했다. 또한 평론가 이일을 주축으로 한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1969~75)와 이건용 · 김복영 주도의 ‘S.T.’(Space & Time 조형미술학회, 1969~81) 등이 결성되어 70년대 전위미술의 실험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이들의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은 전위성을 전제로 현대미술에서 ‘개념’, ‘신체’, ‘장소’ 등의 요소를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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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
HYPER-REALISM
1970년대 후반~1980년대
1970년대에는 단색조 회화가 지배적인 가운데 이와 대비되는 극사실주의 회화가 등장했다. 정밀한 ‘눈속임(트롱프뢰유)’ 기법으로 형상을 부활시키고, 도시화 산업화된 한국사회의 현실을 투영하는 이 화풍은 현실 비판적인 인식보다는 일상의 시각적 편린에 집중하는 정밀한 재현을 특징으로 한다. 1978년 창립된 ‘사실과 현실’ 그룹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었고, 김홍주, 이석주, 지석철, 한만영 등이 참여한 «형상 78»전 등이 이 경향의 주요한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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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트
VIDEO ART
1977~
한국의 비디오아트는 1970년대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의 실험을 계승하여, 1977년 비디오 작업을 선보인 박현기를 필두로 전개되었다. 제1세대 비디오아트는 대중매체나 소통의 문제에 주목하기보다 주로 설치작업을 통해 환경이나 사물의 관계를 탐구하고 자연과 정서적 측면에 주목했다. 1984년 백남준의 위성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소개되어 국내 비디오아트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타라’의 육근병, ‘로고스앤파토스’의 이원곤 등이 비디오 설치 작업을 했다. 비디오로 사회비판적 탐구에 주력한 여성작가 오경화와 김영진, 오상길 등이 있고, 홍성민, 이용백 등은 80~90년대에 걸쳐 소그룹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인포아트»전은 한국 비디오아트가 한 단계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싱글채널비디오 같은 순수영상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90년대의 문주, 홍성도, 공성훈, 육태진 등의 작업을 주목할 수 있으며, 이후 박화영, 김창겸, 함경아, 함양아 등은 가상과 실재, 타자성, 탈장르 등에 주목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비디오아트의 지평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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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경계의 확장
BOUNDARY EXPANSION IN INK PAINTING
1980년대~1990년대
1980년대 한국화단의 변혁은 지필묵의 표현가능성을 실험하는 ‘수묵운동’으로 시작하였다. 수묵운동은 한국화의 전통적인 재료들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는 거친 필선과 방만한 먹의 사용으로 시대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함으로써 전통재료를 둘러싼 담론의 변화를 불러왔다. 1980년대 중반 박생광이 보여준 강렬한 원색의 작품들 역시 채색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천경자의 채색화와 이종상의 고분벽화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규모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기존 한국화 재료와 양식에 구애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1990년대 들어서서 자유로운 재료의 구사와 구상과 추상, 회화와 입체를 넘나드는 거침없는 표현을 보여주는 한국화 경계의 확장 실험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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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MINJUNG (PEOPLE’S) ART
1980년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맥을 같이 하는 민중미술은 형식주의를 중시하는 미술에 반발하여, 미술의 사회적 소통기능 회복과 현실비판 및 민족전통 계승을 지향하는 사회참여적 실천미술을 추구했다. 이념에 기반한 민중미술은 몇몇 그룹 운동을 통해 전개되었는데, 비판적 현실주의를 추구한 ‘현실과 발언’과 ‘임술년’, 현장활동을 통한 민중적 현실주의를 내세운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와 ‘두렁’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실천의 도구로서 판화, 벽화, 걸개그림, 깃발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다. 작가로서 미술가 개인뿐 아니라 집단 제작, 시민판화 운동을 통한 창작주체의 다변화 등 미술의 생산과 활용도 넓히고자 했다.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은 이러한 집단들이 결속하여 ‘민족미술협의회’를 발족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1990년대 민주화 운동의 변화 및 민중미술 내 집단들의 지향점의 차이로 인해 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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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미술
FEMINIST ART
1985~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은 1985년 ‘시월모임’의 윤석남, 김인순, 김진숙이 ‘민족미술협의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며 시작되었다. 이들은 정정엽이 속한 ‘터’동인과 함께 ‘민미협여성미술분과’(1988년 ‘여성미술연구회’로 개칭)를 창설하면서 민중미술에서 도외시한 여성해방을 위한 미술을 민중미술의 맥락에서 실천하려 했다. 또한 박영숙은 윤석남과 함께 «우리 봇물을 트자»전(1988)을 주도하며 여성주의 미술에 박차를 가했다. 90년대 이후 여성주의는 타자성과 소수자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영향 아래 다변화된다. 신체 담론과 함께 몸의 정치학을 보여준 이불, 행동주의 경향의 그룹 ‘입김’,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한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를 수단으로 삼았다. 그 밖에 비디오를 활용한 오경화, 김수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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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미술
POSTMODERN ART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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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개념미술
POST-CONCEPTUAL ART
1990년대 중반
1980년대 말 이후 순수 형식주의를 표방하는 모더니즘뿐 아니라 이념적인 민중미술에서도 벗어나려는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의미 없음과 가벼움의 유연성을 내세우며 키치적이고 자유분방한 오브제와 설치작업을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포스트모던 미술이 등장했다. 80년대의 소그룹과 함께 90년대의 신세대 소그룹으로 불리는 ‘뮤지엄’, ‘황금사과’ 등이 이러한 경향을 주도했다. 이들은 주로 기획전을 통해 활동했는데, «황금사과» 전(1990)을 비롯해 «선데이서울», «메이드인코리아», «쇼쇼쇼» 등이 대표적이다. 포스트모던 미술가들은 후기산업사회와 소비문화에 부응하는 팝적, 키치적 감수성으로 신세대 대중 양식의 표본을 제시했는데, 최정화는 싸구려 플라스틱을 소재로 혼성문화를 형상화했고, 이불은 페미니즘의 연장선에서 퍼포먼스와 설치를 넘나들며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실현했다. 포스트개념미술은 언어에 의해 기입되는 개념미술의 속성을 이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텍스트, 오브제, 뉴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미술의 의미를 성찰했다. 주로 일상 속 사물에 대한 말 걸기로 삶과 미술의 의미를 숙고하기에 ‘철학하는 미술’이라 불리기도 한다. 차학경을 선구로 하여, 90년대 중반 안규철과 박이소가 대표적이며 김범, 양혜규, 홍승혜 등이 이러한 경향의 작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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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비엔날레 / 대안공간의 등장
INTERNATIONAL BIENNALE / ALTERNATIVE ART SPACE
1995~
1990년대 중반에는 비엔날레의 시대가 열렸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과 «베니스비엔날레»의 상설 한국관 건립은 우리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미술 전시문화의 본격적인 지형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에는 «미디어시티서울»(2000년 창설)과 «부산비엔날레»(1998년 시작된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의 이름을 바꿔 2002년 개막)가 창설된다. 1990년대 말에는 몇몇 대안공간이 동시다발로 출현하여 기존 미술계의 경직된 시스템에 맞서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을 지원했다. ‘쌈지스페이스’, ‘풀’, ‘루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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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민중미술
POST-MINJUNG ART
1990년대 말~
포스트민중미술은 1990년대 세계화가 가져온 국제 정치 · 사회 · 경제 · 문화의 역기능에 주목해 ‘미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물으며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미술 경향으로, 정치미술, 사회적 미술, 현실주의 미술로도 불린다. 현실참여적 미술을 실천해 행동주의 경향을 띠는데, 철거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기지촌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에 개입해 현실문제를 들춰내거나 부조리한 역사의 단면을 부각시키고 재구성해 정치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들은 사진과 비디오, 설치뿐 아니라 공동체적 참여, 아카이브, 기록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데, 미디어의 생래적인 정치적 속성을 전략적으로 역이용하기도 한다. 이것이 포스트민중미술을 80년대 민중미술과 차별화하는 지점이다.